지만원의 글을 살펴보자면, 아래와 같은 MB 식의 내가 해봤으니 하는 이야기에...
저는 고단위 수학공식을 발명해냈고, 같은 계열의 수학 정리 6개를 새로 만든 바 있습니다. 오직 한 가지에만 몰두하고 극기에 극기를 반복한 결과였습니다. 꿈에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수학만 생각했습니다. 한 가지에 미처야만 해낼 수 있는 일이 이공계의 박사과정입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았기에 저는 그를 의심했습니다.
자기찬양, 즉, 상대는 나를 능가하지 않는다라는 전제에...
안철수가 첫 바이러스를 찾아내고 이를 위한 백신을 개발한 시점은 1988년 8월, 박사과정을 시작한지 6개월 만입니다. 그 백신이 한국 최초의 것이었다 합니다. 참고로 빌게이츠가 윈도우를 개발한 것은 그가 하버드 대학을 때려 치고 장기간에 걸쳐 오직 컴퓨터 하나에만 몰두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안철수는 그 어렵다는 의과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의학공부에도 몰두하고, 컴퓨터에도 몰두했다 합니다.
27세인 박사과정 1년 차에 백신을 개발했고, 이후 박사과정 3년 동안 계속해서 백신프로그램을 꾸준히 업데이트 시켜 그가 박사학위를 취득한 1991년에는 수많은 종류의 바이러스를 모두 치료하는 종합 V3백신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합니다. 박사과정 3년을 모두 백신개발에 전념했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머리가 뛰어나다 해도 이건 삼국지 또는 무협지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무협지 등장인물이나 되야 자신의 경험을 능가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아래의 추론성 결론을 낸다.
드디어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냈습니다. 1995년 3월 18일, 안철수는 서초에 3명으로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연구소를 차린 지 불과 5개월 만에 미국으로 공학석사를 한다며 떠났습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대목입니다. 안철수연구소는 안철수 없이도 백신을 포함한 여러 가지 보안 프로그램을 개발해낸 것입니다. 연구소는 안철수가 없는 동안에 100억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이는 무엇을 말해줍니까? 백신개발 기술은 안철수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 빌 게이츠에 대해 얘기하자면~ 1973년에 하버드 법학과에 입학하고 수학과로 전과(자신의 적성과 관련)한 다음 폴 앨런이랑 함께 Altair Basic 을 개발하고 이듬해 중퇴하고 MS 사를 설립하였다. 그후, PC 시장의 성장을 예상하여 컴퓨터 언어인 베이직, 포트란 등을 개발하며 70년대를 보냈고 81년에 IBM 의 의뢰를 받아 CP/M 의 카피캣이라고 할 수 있는 MS-DOS 를 개발(사실 여기서부터는 개인의 역할이 아닌 회사의 역할이다)하여 일약 재벌에 이르게 됐다. 윈도우즈는 그 뒤 10년은 더 지난 후 이야기이고...
무슨 말이냐하면,
빌게이츠 - 학업과 병행하여 컴퓨터 언어 베이직 개발
안철수 - 학업과 병행하여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V2, V2+, V3) 개발
빌게이츠 - 회사 설립과 함께 이후 회사 차원에서 MS-DOS, Windows 개발
안철수 - 회사 설립과 함께 이후 회사 차원에서 V3 및 보안 솔루션 개발
차이점이라면,
빌게이츠 - 학업 포기 후 사업 결정
안철수 - 졸업 후 의사직 포기 후 사업 결정
하지만 안철수 역시 그의 사업을 위해 하나를 버렸다는 점은 오히려 빌 게이츠와 더 유사해보인다. 만약, 지만원의 이야기가 성립하려면 안철수는 의사이자 CEO 여야하는 것이지 의사직을 포기한 그는 오히려 빌 게이츠와 닮은 꼴이다.
이야기가 다소 흐트러진 감이 있는데, 지만원이 말한 결정적 단서라고 하는 "백신개발 기술은 안철수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었다"라는 가치도 없는 말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 같다.
안철수는 IBM PC 호환 기종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라고 할 수 있는 (c)Brain 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 해당 기사를 2개월간 연재하였다. 물론, 프로그램의 소스까지 공개하였다.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의사라니! 당시 그 글을 읽은 모든 이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안철수의 첫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철수가 더욱 유명해지게 된 계기는 1989년에 등장한 한국산 LBC(당시 고 삼성회장 이병철의 이니셜이 아니냐하는 우스개소리도 있었다.)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이미 맥아피 등과 같은 해외 백신 프로그램이 존재하는 상황이었지만... 한국산 바이러스의 등장에 의해 이들 백신 프로그램이 무용지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LBC 바이러스 치료 기능이 추가된 안철수의 V2 가 아니었다면 피해가 더욱 컸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무런 비용을 요구하지 않고 무료로 배포한다.(당시 유명했던 한글과 컴퓨터 이찬진씨와 비교해봐도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 많은 당대 유명 프로그래머들이 이후 떴다 사라졌지만... 안철수만은 지금도 반짝이고 있다. 왜일까? ^^)
이어 예루살렘 바이러스 치료 기능을 추가한 V2+ 를 배포하였고, 사람들은 새로운 바이러스가 발견될 때마다 안철수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렇게 V2+ 의 치료 가능 바이러스의 개수는 늘어가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 모든 일들을 의학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그 혼자 진행하였고 당시에도 다들 대단하다고 그랬다. 그 또한 그런 상황이 매우 힘들다고 종종 글에서 표하기도 하였고...
결국, 90년 1월 예의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 V2+ 의 엔진 소스 및 컴퓨터 바이러스에 대한 개념 정의 및 치료 방법 등을 포괄적으로 다룬 글을 연재하기에 이르렀다. 내 기억으로는 더 이상 그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그때까지 그는 의사직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95년에 관련 내용을 정리한 책 바이러스 분석과 백신 제작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정리해보면 수년간 심혈을 기울여 온, 그리고 해외에서는 상용으로 판매가 되고 있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류를 무료로 배포하는 것도 모자라 모든 것을 공개한 것이다. 한창 일하던 시절 빌 게이츠가 MS-DOS 의 소스를 오픈하거나 이찬진이 아래 한글의 소스를 오픈하였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물론, 에릭 레이몬드가 "성당과 시장"이라는 글을 투고하며 전 세계 오픈 소스에 대한 가치를 설파하였지만 그것은 1997년 이후의 이야기다.
그가 90년 V2+ 엔진 소스를 공개한 이후, 국내 백신 업체들이 하나 둘 등장하게 된 것은 우연일까? 그들이 정령 단 한번도 안철수의 글을 보고 연구하지 않았을까? 1993년 4월 터보백신, 1998년 3년 바이로봇의 등장 모두 안철수의 이러한 노력이 없었다면 꽤 뒤에나 가능했을 거라 생각한다.(왜냐하면 나도 그의 마소 연재글을 읽고 백신을 만들어보고자 하였으니까.)
백신은 대충 다음과 같은 형태를 띄게된다.
핵심은 백신 엔진이다.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신종 바이러스가 출몰할 때마다 해당 바이러스의 데이터를 분석한 후, 그 유형을 판별하여 백신 엔진에 연결해주면 된다. V3 엔진은 91년부터 개발되기 시작하였고... 95년 지금의 안철수 연구소가 설립된다. 그 후 5개월 뒤 안철수는 미국으로 떠난다. 백신 엔진은 이미 만들어져있고 관련 기술은 이미 공개한 뒤라서, 연구소가 하는 일은 바이러스 데이터 수집과 이의 탐색, 치료를 엔진에 연결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런데 바이러스 백신 기술이 안철수가 아닌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만원은 좀 더 알아보고 글을 썼어야했다. 애당초 머리속에 적당히 재단한 후에 끼어맞췄을테지만...
비단 백신뿐만 아니라 안철수는 꽤 유명한 어셈블리어 프로그래머였다. 90년 초반 한창 OOP 에 대한 얘기가 화두였을때 어셈블리어로 OOP 를 구현해보려는 시도와 그 글을 기고한 것을 기억한다. 매우 창의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어셈블리어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잘 모를텐데... 어렵고 원시적인 개발 언어로 기억하면 된다. 프로그래머라면 해당 영역을 최고 난이도로 쳐주는게 사실이다. 실감이 안난다고? 아래 프로그래밍 언어 계보도를 첨부하였다. 맨 왼쪽 상단 붉은색 테두리를 친 어셈블리어가 보이는가?
비교할 수 있게 아래 Unix 와 Linux 등 각종 OS 개발에 사용되고 있는 C 와 C++ (C 언어에 OOP 기능 추가) 와 최근 iPhone App 개발 때문에 여러 개발자 울리고 있는 Objective-C 를 초록색으로 표기해두었다.
최근 정치와 관련한 그의 움직임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있는 그의 이미지는 사실 정치와는 남다르다. 그렇지만 그는 인생과 성공이란 화두로 치열하게 살고있는 사람으로 판단되며, 도를 갈구하는 사람과는 또한 구분된다. 내년 총선 이후 그가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까? 또 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호기심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이 글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지금은 그저 오래전 그의 모습을 내 기억속에서 끄집어 내는게 목적이니까. 나 또한 프로그래머로서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지만원의 글을 읽고서야 인정하게 됐다. 그는 무협지에서나 볼 듯한 영웅적인 개발자였고 지식인이었다고...
끝으로 왜 하필 그가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고 있을까? 100분 토론에서 유시민이 했던 말에 100% 공감하며 길었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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